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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1980년대 후반부터 불법비디오로 떠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문에 소문을 거쳐 영화과 학생들이 돌려보기 시작하던 것을 문인들이 구해서 보기 시작했고, 극단적인 두 가지 소문이 나돌았다. 그 하나는 죽여주게 지루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라는 평이었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한 장면을 편집하지 않고 장(長)시간 동안 찍는 롱 테이크는 악명이 높다.
이를테면 이번에 국내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는 <노스탤지아>에서 주인공은 촛불을 들고 온천장을 가로질러 무려 13분 20초 동안을 그저 걷기만 한다. 우스갯소리로 ‘보다 지쳐 잠깐 졸았는데 아직도 그 촛불을 들고 걸어가더라’ 는 푸념도 있다. <희생>의 첫 장면 또한 14분 50초 동안이나 계속된다. 만일 두 가지 소문 중 하나만 돌았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이 이례적으로 이 감독에 대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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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타르코프스키는 <블루>,<화이트>,<레드>를 만든 폴란드 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포트스카와 함께 ‘골치 아픈 스키 형제’ 로 불리기도 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동경대 총장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소문난 영화광이기도 한 하스미 시게히코의 표현을 빌리면, ‘20 세기 사회주의를 살다 간 19세기 교양인’ 이었다. 타르코프스키는 1932년 4월 4일 (아직 사회주의였던) 소비에트 시절 자브라이예에서 태어났다. 지질학을 공부했지만, 해저를 탐사하던 중 ‘물 속에서 움직이는 사물의 흔들림’에 매혹되어 그 일을 그만두고 모스크바 영화 학교에 입학했다. 그의 재능은 이미 첫번째 영화에서 나타나 데뷔작 <이반의 소년시절>은 1962년 베니스 영화제에 초대되어 장 폴 사르트르가 심사위원장 이었던 그 해 대상인 황금사자 상을 받았다. 이 결과에 대해 이탈리아 소설가인 좌파 성향의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비판적인 글을 썼지만, 사르트르는 그에 대해 ‘사회주의적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영화를 옹호했다. 그러나 수상이 타르코프스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다음 영화 <안드레이 루블례브>는 소비에트 내에서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특히 공산당 영화분과 위원장인 세르게이 본다르츄크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가리켜 부르주아적 취향으로 가득 찬 낡은 인텔리겐챠 영화로 소비에트 영화에 매우 위험한 경향이라고 평했다.
영화는 공개가 금지되었고, 그 후 4년 동안 창고에 머물러야만 했지만 놀라운 영화라는 이야기가 철의 장막을 넘어 서방 세계 영화인들 사이에 떠돌고, 마침내 1969년 프랑스 문화성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의 요청으로 칸 영화제에 제한 상영이라는 형식으로 초대 받았다. 심사위원 들은 이례적으로 제한 상영한 이 영화에 심사위원 대상을 안겨 주었고, 소비에트 문화성은 칸 영화제를 비난했다.
그 이후 타르코프스키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일종의 전투가 되었다. 결국 1970년대 내내 힘겹게 <솔라리즈>와 <거울> 그리고 <스토커> 세 편을 만든 다음 타르코프스키는 칸 영화제를 방문했다가 소비에트 정부에 의해 돌아오는 길을 거부당하면서 망명 길에 오르게 되었다. 대부분의 소비에트 예술인들은 망명을 떠나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테면 피아니스트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에밀 길레스, 스비야토슬라브 리헤테르처럼. 그러나 타르코프스키는 이 뜻하지 않은 망명을 저주 받은 운명으로 생각했다. 그는 태어난 대지를 벗어난 예술가는 영혼을 잃어버린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조국을 떠나서 단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 하나는 <노스탤지아>이고 다른 하나는 <희생>이다. 그 둘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느냐는 취향의 문제다(이왕이면 둘 다 보는 쪽을 권하고 싶다). 사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아무리 글로 써도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의 영화를 보는 건 거의 기적 체험이다.
<매트릭스>를 보고 난 다음에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면 종종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장면들이 즐비하게 등장한다. 이를테면 <거울>에서 카메라는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과 같은 속도로 이동한다. 아직 디지털 기술은 없었고, 그 장면은 특수 촬영한 것이 아니다. 바람이 불 때까지 무한정 기다린 것일까? 바람이 불 때 어떻게 카메라는 그와 같은 속도로 이동하는가? 그는 영화에서 마술을 부리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