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폭력영화가 돼버렸다. 나한테 중요한 것은 액션이다. 싸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율동, 동작의 쾌감이 나를 매혹시킨다"
류승완 감독은 네 편의 단편을 이어 붙인 특이한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올해 상반기의 주목할만한 신인감독이다. 이제 막 27살의 나이인 그는 게릴라식으로 억지로 만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기대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을 뻐기기보다는 불편해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필름2.0 사무실에 온 그는 뭔가 불안해 보이는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사실, 제 영화를 그렇게 좋게 본 건 아니죠? 일부러 띄워줄려고 그러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난 내 영화가 그렇게 좋다고 보진 않는데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평론가 이효인의 말대로 '반영의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반영'이라는 이상을 이뤄낸 특이한 장르영화다. 성룡, 오우삼, 샘 페킨파, 쿠엔틴 타란티노, 이소룡, 마틴 스콜세지 등 동서양의 액션영화를 참조했음에도 그의 영화는 장르적 매혹과 현실주의적 패기가 팽팽한 끈을 이루며 사이좋게 공존하는 신기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한국 영화 역사상 어느 세대보다 장르영화에의 매혹을 숨기지 않으며 진지한 얘기에 대한 강박을 당당하게 벗어 던졌는데도 무게 잡는 다른 어떤 영화보다 진심이 묻어 있는 것이다. 류승완이 그 패기를 시장에서도 입증받고 욱일승천할 수 있을까. 필름 2.0이 본인 표현대로 '갑자기 너무 주목받아 어리둥절한' 류승완 감독을 만났다.
외모가 수려하다. 직접 영화에 출연도 했는데. 연기하는 게 재미있던가.
예전에 미팅 나가면 완전히 왕따였다. 한 시간 동안 성룡 영화 얘기만 하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웃음) 이거 참, 주변에서 연기 잘 했다, 멋있다, 칭찬해주지만 내 소감은... 절대 CF 섭외는 들어오지 않겠구나, 라는 것이다. (웃음) 대사 연기보다 액션 연기는 재미있다. 난 변태인 것 같다. 계단을 구르는 장면처럼 몸으로 때우는 연기가 신이 났다. 자동차로 속력을 내는 것 말고는 그런 느낌을 모를 것이다. 때로는 연기 실력이 늘었다고 느꼈다. 아니, 내가 정말 540도 회전으로 발차기를 했단 말인가, 스스로 대견해 하고.(웃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패싸움', '악몽', '현대인', '죽거나 나쁘거나' 4개 단편을 이어 붙인 구성이다. 스스로 이 네 개의 단편을 비교한다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최대 단점은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네가지 에피소드가 전부 다른 사람이 만든 것 같다. 하나의 흐름으로 관통하는 힘이 없다. 처음에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대본을 쓰면서 이 영화는 '종합선물세트'다, 그렇게 생각했다. 좋아하는 온갖 장르영화를 다 버무려 액션, 호러, 필름 누아르의 색깔을 집어넣고 싶었다. 치기 어린 시도였지만 해볼만한 것이었다.
일관성이 없다는 건 단점이자 장점이다. 네 에피소드를 연달아 만들면서 생각이 달라진 게 있을까.
아, 영화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거고 현장에서의 감이란 게 참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첫 번째로 찍은 '패싸움'은 콘티대로 찍었지만 두 번째로 촬영한 '현대인'은 즉흥연출이었다.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에서 진검승부할 수 있는 여지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악몽'은 준비 없는 상태에서는 무조건 영화가 안된다는 것을 느꼈고 '악몽'과 거의 동시에 만든 네 번째 에피소드 '죽거나 나쁘거나'는 영화가 돈도 기술도 아니며 사람의 의지로 하는 것을 실감했다. (웃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도 이제 액션영화 키드가 등장해 아무런 강박감 없이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 액션영화를 보고 느꼈던 쾌감을 영화로 보여주고 싶어하는 세대의 출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여러 액션영화를 인용한 흔적이 많이 나지만 액션 장면 묘사가 진짜로 실제 싸움을 보는 것 같은 실감이 난다는 것이다. 오우삼처럼 찍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그렇게 사실적인 싸움 묘사로 간 것인지, 아니면 영화의 주제와 맞는 부분이 있어서 액션 장면 설계를 그렇게 했는지 궁금하다.
가혹한 질문! (웃음) 솔직히 말하면 첫 번째 에피소드 '패싸움'을 찍을 때 액션영화의 모범을 삼았던 건 성룡 영화였다. 그게 잘 안됐다. 배우들도 스턴트맨이 아니고 나도 사실 성룡 영화를 흉내만 냈으니까. '현대인'을 찍을 때는 숱한 액션영화를 보며 머릿속에 입력된 데이터로 액션의 합을 맞추며 찍었는데 촬영 이틀째부터 머릿속에 구상했던 액션의 합이 떨어졌다. 그때 조용규 촬영감독이 "지금쯤이면 서로 지칠 것 같은데 그럼 개싸움처럼 가야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래서, 에이, 합도 떨어지고 이거 의도였다고 시치미 떼고 가면 되지 뭐, 그런 배짱으로 막싸움을 찍었다. 영화제에 가서 깜짝 놀랐는데 관객은 초반의 합을 짠 액션이 아니라 서로 엉키고 막 싸우는 액션 장면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옛날 한국영화에 장동휘, 박노식이 나오는 액션영화를 보면 합이 안 맞는다. 개인적으로 그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요즘 관객들은 오히려 거기서 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죽거나 나쁘거나'의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는 실제 싸움 현장에 있는 다큐멘터리 느낌을 주자, 이런 식으로 밀고 나갔다.
'현대인'은 일대일 결투 장면, '패싸움'이나 '죽거나 나쁘거나'는 집단 결투 장면 위주이다. 액션 연출의 착상도 달랐을 것 같은데.
일대일 격투를 잘 찍는 감독은 대단하다. 집단 격투장면은 이쪽이 재미없다 싶으면 다른 쪽으로 넘어가면 된다. 일대일 결투는 순전히 배우들의 움직임과 육체 동작만 갖고 보여주면서도 어떻게든 재미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액션의 컨셉을 명확히 잡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영화관에 드나들면서 내가 보고 싶어했던 것을 찍자는 생각이었다. 촬영하면서 들고 찍기가 가공할 위력의 기법이라는 걸 느꼈다. 카메라와 인물이 같이 움직이면서 굉장한 사실성을 전해준다. <쉬리>의 총격전도 카메라를 고정으로 찍었으면 그런 효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성장시절에 당신이 액션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쾌감과 요즘 관객이 당신의 액션영화를 보고 느끼는 쾌감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가.
내 영화는 조악하다. 나는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폭력영화가 돼버렸다. 난 비폭력주의자인데. 오우삼이 액션을 안무하듯이 설계하듯이, 성룡이 버스터 키튼의 영화를 교과서 삼아 액션을 찍듯이, 그렇게 만들고 싶었는데... 나는 영화의 어원이 활동사진이듯이 영화에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 나한테 중요한 것은 액션이다. 싸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율동, 동작의 쾌감이 나를 매혹시킨다. <그랑 블루>나 <롤라 런>도 나는 액션영화로 읽는다. 마틴 스콜세지의 유려한 카메라 워크, 리듬감도 좋아한다. 내가 만든 영화는 내가 즐겨 보던 영화와는 조금 다르지 않나 싶다.
요즘 관객이 당신 영화를 재미있게 볼 것 같은가.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는 오우삼, 성룡의 영화를 많이 인용한 흔적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더 유사해진 영화는 타란티노의 영화다. <저수지의 개들>을 만들 때 타란티노는 오우삼만큼의 테크닉이 없었고 그래서 오우삼 영화의 비장미를 극사실주의로 밀어붙인 부분이 있다. 운동감, 율동감, 이런 스타일의 계승보다는 비장미의 정수를 극단적으로 추구했던 것이다. 대사 처리와 구성을 비롯한 <죽거나 나쁘거나>의 모든 것이 타란티노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맞다... 쉽게 말해 수학을 못하는 대신, 국어를 택하겠어 이런 거다. 오우삼의 테크닉도 배우고 싶고 성룡의 합도 시도하고 싶고 스콜세지의 리듬감도 보여주고 싶지만 내공도 모자라고... (웃음). 내가 연출부로 참여한 영화도 액션영화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좋아했던 액션영화를 흉내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타란티노의 영향을 받은 건 드라마 작법이다.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지 않았으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구성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승전결 구조를 자유롭게 뒤집어보고 마지막에 뒤통수를 때려주면 되지 뭐, 이런 배짱으로 만들었다.
깡패영화는 장르 영화 가운데 가장 삶과 밀착한 장르이다. 거짓 환상을 뒤집어 보여주기 때문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무릇 자기 인생을 지도하는 이는 자기가 아니나니'란 성경 말씀 인용을 비롯해 영화 결말이 매우 비관적이다. 그건 가난에 시달렸던 류승완 감독 본인의 삶이 지난했던 것과도 관계 있는 것일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나 자신과는 사실 많이 다르다. 나는 양아치를 싫어한다. 폭력도 싫어한다. 나와 내 영화가 공통점이 있다면 인생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 당신의 인생은 이제 잘 풀려가고 있지 않나.
어렸을 때는 24살에 데뷔작을 걸작으로 남긴 오손 웰즈처럼 영화를 만들겠다, 큰소리치고 그랬지만 그건 치기였고... 지금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오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다. 어리둥절할 뿐이다.
시장의 반응은 냉정한 것이다. 더욱이 극장을 2개관 밖에 잡지 못했는데.
물론이다. '이거 나 뜨는 거 아냐 그러다가 2천명밖에 안 들면 역시 난 안돼.' 그러고 말겠지. (웃음). <정>, <하우등>, <내 안에 우는 바람>, <벌이 날다> 흥행을 보면 알지 않겠는가.
아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는 분명 기존 독립영화와는 다른 패러다임의 징후가 있다. 어쩌면 처음으로 큰 이야기에 대한 강박감 없이 장르영화의 매혹을 추구하고 그러면서도 현실을 놓지 않는 힘 말이다. 같이 일했던 스탭들은 영화의 결과에 만족하나.
서로 냉정해지려 노력한다. 특히 주변에선 나한테 냉정하게 대해준다. 그게 고맙다. 독약을 마실 기회가 많았는데 같이 일한 분들이 잡아줬다. 큰 은혜를 입고 산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거의 스탭들이 무보수로 일해주다 시피 했는데 어쩜 그리 인복이 많을까.
나는 인복이 많지만 그 분들은 인복이 없는 것이다. (웃음) 무작정 찾아가 사정하고 그럼 불쌍해서 한 번 도와주고 그런 식으로 일이 돌아갔다.
서울 관객이 만 명 넘으면 스탭들에게 대가가 돌아가나.
서울 관객 만 명과 비디오 만장이면 손해는 보지 않는다. 거기서 조금만 더 잘되면 스탭들에게 버스 카드 한 장이라도 돌리고 싶다.
소원대로 액션영화 데뷔작을 만들었는데. 실제 찍고 나니 어떤가, 야심이 생기는가. 다음에 더 좋은 조건이면 한국에 없었던 액션영화의 모범을 만들고 싶다던가 하는.
오우삼의 영화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고 봐도 오우삼 영화라는 걸 알 수 있다. 내 소원은 류승완 브랜드를 갖고 싶은 것이다. 그걸 얻기 위해 다양하게 접근하고 싶다. 젊은 놈이 벌써 태도를 고정하는 것은 위험하고. 다양하게 여러 방식을 시도하다가 살아 남으면 그게 내 실력이다. 얼마전 제작자와 얘기를 나누다가 <해결사>, <5인의 왼손잡이> 같은 비장미 넘치는 예전 한국 액션영화를 부활시키면 얼마나 좋을까를 꿈꿨다. 박노식, 장동휘, 황정리, 옛날 배우들은 카리스마가 있었으니까. 아니면 슬랩 스틱 액션도 하고 싶고. 처음부터 끝까지 막 나가는 액션도 하고 싶고. 호러 액션, 가짜 다큐멘터리도 찍고 싶고.
액션은 사실 감독의 상상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액션의 합을 짜는 무술감독의 재능과 배우의 육체적 능력과 감독의 상상력이 합해져야 하는 것인데.
'죽거나 나쁘거나' 에피소드의 세 장면은 무술 감독과 함께 작업했다. 주차장에서 싸우는 장면과 형사가 검거하는 장면, 공사장 패싸움 장면을 무술팀과 일했다. 되게 재미있었다. 영화는 팀워크다. 서로 같은 그림을 그린다는 전제하에 각자 전문적인 영역에서 최대의 에너지를 합하는 게 감독의 몫이다. 그래서 사실적인 액션을 만들 수 있었다. 그건 자신감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얼마나 치열하게 해내려는 노력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비천무>의 액션장면에 놀랐다. 기가 막히지만 그건 홍콩 액션팀의 실력이다. 그 무술 팀이 빠지고 시리즈로 만들었을 때도 그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결국 우리끼리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쌓아 간다면 언젠가는 그 수준을 넘어서지 않을까. '패싸움'과 '죽거나 나쁘거나'의 액션 감은 틀렸다. 앞으로 노력할 부분이다. 그 태도만 지키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감성은 주류 감성이다. 그러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액션영화라도 대다수 대중이 즐길만한 감성이 아닌, 비타협적으로 삶의 결기와 잔인함을 보여주는 비주류 감성의 패기가 있다. 낭만주의나 영웅주의를 배제해놓고 있다. 앞으로 류승완 감독이 성공해서 주류 영화 시스템 안에서 작업한다면 혹시 그런 문제로 갈등하지는 않을까.
크게 달라질 게 없다. 나는 느끼한 걸 싫어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영웅들도 뭔가 나사가 풀린 인물이다. <리셀 웨폰>의 자살 중독증에 걸린 마틴 릭스 형사나 <더티 하리>에서 미친 듯이 범인을 쫓는 형사나 다 비정상이다. 성룡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 이소룡 영화는 너무 완벽해서 부담을 느낀다. 성룡의 영화는 뭔가 풀려있다. 성룡은 툭하면 악당에게 맞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낭만적인 비장미를 좋아하지만 시나리오를 쓰면 이상하게 주변사람들이 주인공을 가만 두지 않는다. 나도 다음 영화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다.
성룡은 밝고 쾌활한 기운을 풍기고 주윤발에게는 뭔가 신화적인 영웅의 풍모가 있다. 당신 영화의 주인공에게서는 뭔가 스스로 무너져 가는 분열 기미가 있다.
나도 실제로는 쫀쫀한 인간이다. 무서운 건달을 만나면 바로 눈을 내리깔고.(웃음) 순풍 산부인과의 박영규 캐릭터를 제일 좋아한다. <분노의 역류>를 보면 왜 그 '네가 가면 나도 간다라'는 투의 대사 있지 않은가. 영어로 하면 멋있는데 우리말로 하면 깬다. 난 쫀득쫀득한 인물 캐릭터를 더 좋아한다.
당신이 영향받은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는 자주 구원의 문제를 건드린다. 하지만 당신 영화에는 그런 강박이 없는 것 같다.
아니다. 나는 늘 죽음 이후를 생각한다. 죽어서도 지금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놀 수 있을까. 죄짓고 살지 말아야지. 늘 고민하고 회개하려고 노력한다. 착하게 살자, 남들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때리지도 말고 맞지도 말고 살자는 주의다.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