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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관심모드/세상돌아가는소리

포기는 김치담글 때나 쓰는 말입니다

포기는 김치담글 때나 쓰는 말입니다
 
-노숙자 출신 강신기 데코리 사장  

두바퀴 스케이트 보드인 에스보드 제조회사 데코리의 강신기 사장. 그는 작년에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이 회사의 제품인 ‘에스보드’는 세계적인 발명 전시회를 휩쓸고, 수 백 억원의 로열티 계약을 따냈다.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그는 그러나 노숙자 출신 사장으로 더 유명하다. 강 사장은 지금도 지난 2000년 유난히 추웠던 겨울, 서울역 지하차도를 잊지 못한다. 광맥을 찾아 탄맥을 뚫던 광부들이 도달해간 갱도의 마지막 자리 같은 곳. 이 곳에서 노숙자 생활을 한 그는, 절망과 더불어 재기의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서울역은 노숙자들에게는 인생 막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퀭한 눈동자에 추레한 옷차림의 인생 패배자들. 깎지 않은 머리칼과 수염으로 얼굴이 덥수룩한 그들 가운데는 겨울을 넘기고 나면 사라지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  

그가 서울역 노숙자 생활을 하게 된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그가 운영하던 침대 유통 회사가 문을 닫은데 따른 것이다. 집도 경매로 넘어가 버려 아내는 충주에 있는 친정집으로 내려가야 했다. 빈털터리가 돼 버린 그에게, 15년 동안 연락이 없던 아버지가 말기암 환자가 돼 나타난 것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부도를 맞기는 했지만, 당시 재기를 위한 노력을 한시도 게을리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호소하는 아버지가 치료 한번 받아 보지 못하고 보름 만에 돌아가시자, 모든 의욕을 잃고 말았습니다.”

병든 아버지를 약 한 첩 쓰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했다는 자책이 내내 그를 괴롭혔다. 한숨을 쉬고 술에 의지하는 시간이 늘어났으며, 맨 정신일 때도 고시원이나 사우나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나 하나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다가도 다시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몸을 지탱해 나갔습니다.”

엄혹한 세월을 견뎌내던 그는, ‘물영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한 노숙자의 선행을 지켜보면서 재기의 희망을 다지게 됐다고 한다. 그는 매일 밤 서울역을 돌면서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물이 담긴 물병을 나눠 주며 강 사장의 주의를 끌었다. “노숙자 신분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사실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하지만 물영감은 달랐습니다. 따듯한 인정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됐고, 제 자신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됐습니다. ”  

그가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신문을 정독하고, 아이디어를 찾아 거리를 헤맨 것도 이 때부터다. 아이들이 타고 노는 ‘킥보드’를 보게 된 것은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구름판을 교대로 밟아 몸을 흔들어 앞으로 나가는 히트상품 ‘에스보드’는 킥보드에서 힌트를 얻어 발명하게 된 것.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육신이 고달플 때마다 멋지게 재기한 모습을 그려 보십시오. 포기는 김치담글 때나 쓰는 말입니다.” 희망전도사가 전하는 메시지다.  

강신기 사장

■ 1960년 충남 부여 출생 / 80년 천안공고 기계과 졸업/ 94년 황토아랫목 사장/
현재 데코리 대표이사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