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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하루/문화생활

앤디워홀(Andy Warhol)전시회에서 예술가의 느낌을 경험하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전시회(Andy Warhol, the Greatest)가 국내 최대 규모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는 소리를 듣고 바쁜 시간을 할애해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주말이 더 바쁘다 보니 평일 저녁을 이용해서 전시회를 관람했습니다.

책에서든 잡지에서든 이름만 들어봐도 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비치한 전시회일것이라고 생각하고 참석했는데,
의예로 앤디워홀의 발자취와 희귀한 소장품들을 볼 수 있는 의미있는 기회였습니다.
앤디워홀이 수집한 책에서 부터 작품들의 소재가 되었던 유명 연예인들의 사진과 포스터, 신문들...

창조적인 고통과 집념으로 탄생한 팝아트 작품들을 하나 보면서,
순수예술과 상업적인 오브제가 교차하면서 발생하는 오묘한 광합성 작용을 경험하였습니다.

앤디워홀 소개 [Andy Warhol, 1928.8.6 ~ 1987.2.22]

앤디 워홀 192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의 한 슬로바키안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피츠버그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회화와 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1949년 뉴욕으로 진출, 『보그』, 『바자』등 유명 패션지의 삽화와 광고 제작에 참여하며 상업 디자이너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만화의 한 컷, 신문보도 사진의 한 장면,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 등 매스미디어의 매체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전사(轉寫) 확대하는 수법으로 현대의 대량소비문화를 찬미하는 동시에 비판하여 이름을 떨쳤다. 영화와 소설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여 1960년대 미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후 순수 미술로 전환, 평단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는데, 1962년 시드니 재니스 화랑에서 열린 「뉴 리얼리스트 전」에 출품한 「캠벨 수프 캔」이 그 대표적 작품이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워홀은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을 순수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끊임없이 복제하고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예술 자체의 정의를 재고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는 뉴욕에 「팩토리」라는 이름의 스튜디오를 열고 「예술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자신의 작품을 찍어 내게 하였다. 대중의 관심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 작품 자체를 대량생산하였던 것이다.

워홀은 예술을 광고화하고 땅에 내려오게 하여 대중이 가지고 놀게 만들었다. 팝 아트는 코카콜라 같은 것이다. 돈을 더 낸다고 더 좋은 콜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더 내면 수가 많아지지 내용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같은 것을 마신다. 대통령이 마시는 콜라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마시는 콜라나 길거리의 건달이 마시는 콜라나 모두 같은 것이다. 근엄하지 않고 평등하고 쉽다.

이와 같은 일상적인 것에의 관심, 돈과 명성에의 집착은 그에게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그의 성공을 비난하거나 폄하시키는 구실을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워홀은,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라는 반응이다. 나아가 그러한 사람들의 반응과 언론의 공격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고, 그러한 일상적인 사물들이 갖는 보편성과 대중성이 미국 문화의 본질이자 미래의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바라고 보았던 그는 자신의 예술을 정당화할 어떤 철학보다는 자신이 작품을, 사랑을, 시간을, 인간관계를 어떻게 다루고 성공시켜 나가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

192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의 한 슬로바키안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피츠버그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회화와 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1949년 뉴욕으로 진출, 『보그』, 『바자』등 유명 패션지의 삽화와 광고 제작에 참여하며 상업 디자이너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만화의 한 컷, 신문보도 사진의 한 장면,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 등 매스미디어의 매체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전사(轉寫) 확대하는 수법으로 현대의 대량소비문화를 찬미하는 동시에 비판하여 이름을 떨쳤다. 영화와 소설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여 1960년대 미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후 순수 미술로 전환, 평단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는데, 1962년 시드니 재니스 화랑에서 열린 「뉴 리얼리스트 전」에 출품한 「캠벨 수프 캔」이 그 대표적 작품이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워홀은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을 순수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끊임없이 복제하고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예술 자체의 정의를 재고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는 뉴욕에 「팩토리」라는 이름의 스튜디오를 열고 「예술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자신의 작품을 찍어 내게 하였다. 대중의 관심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 작품 자체를 대량생산하였던 것이다.

워홀은 예술을 광고화하고 땅에 내려오게 하여 대중이 가지고 놀게 만들었다. 팝 아트는 코카콜라 같은 것이다. 돈을 더 낸다고 더 좋은 콜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더 내면 수가 많아지지 내용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같은 것을 마신다. 대통령이 마시는 콜라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마시는 콜라나 길거리의 건달이 마시는 콜라나 모두 같은 것이다. 근엄하지 않고 평등하고 쉽다.

이와 같은 일상적인 것에의 관심, 돈과 명성에의 집착은 그에게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그의 성공을 비난하거나 폄하시키는 구실을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워홀은,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라는 반응이다. 나아가 그러한 사람들의 반응과 언론의 공격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고, 그러한 일상적인 사물들이 갖는 보편성과 대중성이 미국 문화의 본질이자 미래의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바라고 보았던 그는 자신의 예술을 정당화할 어떤 철학보다는 자신이 작품을, 사랑을, 시간을, 인간관계를 어떻게 다루고 성공시켜 나가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YES24 제공]

 
앤디워홀전시회에 대한 소개...

http://www.warhol.co.kr/02_andy/andy_01.php


늦은 저녁 시간에 찍어본 서울시립미술관 간판.....


늦은 오후에 앤디워홀전시회에 가본 적이 많이 없었는데,
 과감히 시간을 내어 앤디워홀 전시회에 도착했습니다.


앤디워홀의 위대한 세계 전시회

입구에 커다란 포스터가 놓여져 있습니다.



앤디워홀전시회 입구 전경....


1 전시관을 보고 밖으로 나오면 앤디워홀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사진들과 어록들이 있습니다.


앤디워홀의 발자취


매혹적이고 그윽한 느낌이 드는 앤디워홀 모습...


가까운 위치에서 찍어봅니다.




먹음직스런 바나나이네요. 저녁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배가 고팠습니다.


한 직장인 분께서 한 작품을 만드셨습니다. 우연찮게 찍히셨네요.


다른 각도에서 찍어본 바나나 오브제


앤디워홀의 어록




앤디워홀의 어록


앤디워홀의 어록


이색적이네요. 앤디워홀의 어록


상업예술가 다운 앤디워홀의 어록


앤디워홀의 어록


전시장 밖에 걸쳐놓은 커다란 앤디워홀 사진입니다.


앤디워홀의 일대기....


앤디워홀 팜플렛 소개 내용 입니다.


앤디워홀 전시회가 4월 초 까지 진행합니다.
현대적인 팝아트 장르를 창조한 앤디워홀 전시회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하루 업무를 끝마치고 오후 7시 부터 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은 피곤했지만, 앤디워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화려한 색채와 감각들이 긴장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상업적인 오브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작품들..


앤디워홀 회고전에 대한 소개
전시회를 돌아보면서 개인적인 소장품에서 보지못했던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앤디워홀 작품에 대한 짧은 소개


앤디워홀 작품에 대한 짧은 소개


앤디워홀 작품에 대한 짧은 소개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 전시회를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도전과 열정을 경험했습니다.

순수 예술과 상업적인 요소들을 배합하여 선도적인 문화코드를 구축한 예술가의 삶은
내가 걸어온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앤디 워홀의 철학 

앤디 워홀의 철학

http://www.yes24.com/24/goods/2547913?scode=032&srank=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