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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하루/일상추억담기

잘 생긴 배우, 짐 캐리

원문출처 : 서일호의 문화사랑
 

짐 캐리. 그가 영화 [마스크]로 인간이 낼 수 있을까 싶은 정도의 표정을 보여주었을 때,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를 ‘코믹한 연기’를 하는 재미있는 배우로만 인지했다. 과장된 표정과 연기는 웃음을 원하는 관객들에게 늘 만족감을 주었고, 언제나 그러한 모습들을 기대했다. 그러나 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가 어느 날 문득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고 서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달았다. 짐 캐리가 매우 잘 생긴 배우라는 것을.

그의 이름이 관객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마스크]는 독특한 느낌을 주는 코미디 영화였다. 짐 캐리는 영화 속에서 ‘초록색 마스크’만 쓰면 주체하지 못할 만큼 장난끼가 흐르는 괴물로 변신하는 주인공을 맡았다. 이 장난끼 많은 캐릭터에 맞춰 그는 사람이 사용 할 수 있는 최대의 안면 근육을 사용한 듯 한 표정을 선보이며 이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해 냈다. 사람들은 [마스크]에서 그가 했던 표정 연기의 많은 부분들이 CG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다. 짐 캐리 만의 몸짓과 표정으로 ‘마스크’의 캐릭터를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 냈던 그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배우로서의 성공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코미디 영화로 인해 꽤 오랜 동안 ‘코믹 연기 전문 배우’라는 굴레를 쓰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영화 [마스크]를 곰곰히 잘 뜯어보면, 장난끼 다분한 괴도 ‘마스크’ 보다는 초록색 마스크를 쓰지 않은 소심한 회사원 ‘스탠리’ 라는 인물이 들어온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장난끼 넘치는 ‘마스크’의 본질은 이 소심한 회사원 ‘스탠리’ 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은 그 이름 조차 쉽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마스크’를 쓴 그의 연기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은 ‘마스크’안에 본 모습인 ‘스탠리’의 이름은 잊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그는 영화 [트루먼 쇼]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트루먼 쇼]에서 진짜 세상처럼 꾸며진 거대한 스튜디오 세트 속에서, 출생하는 그 순간부터 자신의 모습을 전 세계로 생중계 ‘당하는’ 인물 ‘트루먼’을 맡게 되었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기존의 영화들과 달랐지만, 사실 그가 연기해야 하는 ‘트루먼’이라는 인물 자체는 과장됨이 없는 매우 평범한 캐릭터였다. 가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모르는 소시민적인 캐릭터였던 만큼 그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짐 캐리는 이 영화에서 ‘트루먼’을 연기하면서 [마스크]의 익살스러움에 묻혀버리고 말았던 ‘스탠리’의 과장 없는 성격을 살려낸다. 많은 사람들이 명장면으로 꼽는 것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가 거대한 세트의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쾌활한 모습으로 평소처럼 인사하는 ‘트루먼’의 모습을 짐 캐리가 아니었다면 그토록 잘 그려낼 수 있었을까. 문 밖을 나서는 두려움과 특유의 쾌활함이 섞인 듯한 이 장면은 짐 캐리라는 배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 영화로 그는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진지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임을 입증해 냈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 영화로 단순히 ‘연기 변신’이상의 새로운 것을 보기 시작했다. 짐 캐리라는 배우가 정극 연기를 하기에도 충분한 배우라는 것을 관객들도 깨닫게 된 것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그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트루먼 쇼]가 정극 연기로써도 대중들에게도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면, [이터널 선샤인]은 그 가능성을 다져가는 영화였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한 연인의 평범한 만남과 이별 이야기를 조화시킨 이 영화에서, 그는 관객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짐 캐리’ 혹은 ‘마스크’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낸다. [마스크]의 익살스러운 모습과 [트루먼 쇼]에서 보여줬던 진실을 원하는 평범한 회사원을 넘어, 사랑에 아파하는 남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사랑을 잃은 것에 대해 아파하고, 분노하며 배신감을 느끼다가 결국 기억을 지워내기에 이르는 ‘조엘’ 캐릭터는 짐 캐리와 놀라우리만치 잘 어울렸다. 이 영화 속에서 그는 거의 한번도 웃는 표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모습이 그와 그토록 잘 어울릴 수 있었다는 것을 왜 진작 알아채지 못했을까. 그가 [트루먼 쇼] 이후 코미디를 버릴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브루스 올마이티]나 [뻔뻔한 딕&제인]등의 코미디 영화를 택하기도 했다. 그는 코미디 작품을 인지도를 넓히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배우로서 자신에게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관객에게 보여주길 원했고,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최선을 다했다. 많은 배우들이 정극 연기를 하고, 인정을 받게 되면 대부분 코미디로 돌아오기 싫어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자신의 연기 인생의 한 부분으로서 코미디를 받아들이고 있는 듯 하다.

이처럼 장르를 오가던 연기를 펼치던 그는 새 영화 [넘버 23]을 통해 또 한 발자국 전진해 나간다. 스릴러 장르인 [넘버 23]의 주인공 ‘월터’로 자신이 가진 또 다른 모습을 펼쳐 보였다. 숫자 23의 환상에 시달리는 남자로, 그리고 책 속의 형사로 1인 2역까지 소화해 낸 그는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그의 역량을 확인시켜 준다. 깊은 절망과 집착 속에서 웅크린 그의 모습에 이제는 그 누구도 그를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 가두어 둘 수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지 그 뿐만 아니라 이제 그가 해 내지 못할 캐릭터는 없을 것이라는 신뢰감도 생긴다.

짐 캐리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있자면, 그의 연기 폭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이 간다. 생각해 보면 그는 자신이 그 동안 보여줬던 이미지에서 완전한 변신을 시도했다기 보다는, 이전에도 이미 가지고 있던 다양한 면들을 하나씩 꺼내 사람들에게 선보여 왔다. 그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고, 때로는 자신을 잡는 굴레가 되기도 했던 코미디 연기를 하고 있을 때에도 조금만 눈을 돌리면 그 속에 다양한 성격들이 들어앉아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관객들은 이제야 비로소 웃지 않는 그의 얼굴과 마주하게 되었다. 문득 그의 얼굴이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잘 생긴 배우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웃고 있을 때에는, 혹은 웃음을 주고 있을 때에는 알 수 없었던 얼굴이다. 이 새로운 얼굴로 그는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연기를 보여 줄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더욱 더 넓고 깊어질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 조수빈 시네티즌 기자(www.cinetiz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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